성공회대학교 신영복 교수 별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자 통일혁명당사건 20년간의 옥살이..


정말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20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하시다가 이제 조금 편하게 여생을 보내셔야 하는데 그 20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안타깝네요.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교수 별세 소식.. 15일 신영복 교수님이 피부암으로 별세했다고 합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담론 등을 쓰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 교수는 1998년 성공회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2006년 퇴임 후에 석좌교수로 강의를 했습니다. 신영복 교수는 시대의 지성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신영복 교수는 1986년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에 연루됐다고 해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후 20년 2개월간 옥고를 치른뒤 1988년 가석방됐으며 20년 2개월간 독방에서 생활하셨다고 합니다.



아래는 1989년 실제 신영복 교수님이 한 인터뷰의 내용 일부입니다. (가석방 1년 후)


통일혁명당사건이란 도대체 무슨 사건이었습니까? 무엇을 했길래 20년 이상이나 감옥살이를 했나요?

통일혁명당사건을 나도 잘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감옥을 살았던 것은 내가 했던 일보다도 남북의 정치적 상황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 않나 합니다. 우리가 한 일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연구 모임을 하면서 학생서클들을 조직해 지도했고 나아가 일부 학생시위를 조직했는데, 요즘의 학생운동 수준이지요.



1998년 가석방 후 신영복 교수님이 수감 생활을 하면서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책은 신영복 교수님이 수감생활을 하면서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책으로 묶은 것입니다. 이후에 신영복 교수님은 '강의' '담론' 등의 책을 발표했고 사람들에게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알려지게 됐습니다.











또한 신영복 교수님은 신영복체, 어깨동무체 등으로 불리우는 글씨체로도 아주 잘 알려졌으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주 브랜드인 '처음처럼'도 신영복 교수님의 필체입니다. 처음처럼은 신영복 교수님의 감옥에서 지은 시 제목과 서체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신영복 교수님의 글씨체는 관공서나 기업의 건물 현판에도 많이 사용됐습니다.


신영복 교수님의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순님과 아들 지용씨가 있으며 현재 서울 목동 이대병원에 안치돼 있습니다. 16일 성공회대회로 운구될 예정이며, 장례는 이 대학에서 학교장으로 치러진다고 합니다. 신영복 교수님의 빈소는 16일 학내 성당에 마련될 예정입니다.




신영복 교수는 2014년에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으며 피부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끝내 숨졌습니다. 실제로 돌아가시기전 10일간 자진해서 음식을 끊었다고 합니다. 암으로 인한 고통이 모르핀을 맞아도 그 고통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1986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하다가 1988년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 1989년 사면복권됐으며 사면복권이된 날 나온 책이 바로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된 뒤 석방되기까지 20년간 수감생활을 하면서 느낀 고뇌를 230여장의 편지와 글로 풀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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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예진아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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